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가 분신 당시 외친 말>
2021년 12월 16일 방영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3 9회에서는 피로 쓴 약속이라는 주제로 전체 열사 사건을 다룹니다. 홍경인이 주연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라는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세히 소개가 된 바 있지만 그 영화 또한 나온지 너무 오래 되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전태일 열사에 대해 잘 모를 것 같아요.
최근 최저임금이 계속 오르고,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고, 주휴 수당과 시간 외 근로 수당, 연차 수당 지급 등 근로자들의 처우가 많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이 시작에는 전태일 열사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전태열 열사
전태일 열사는 1948년 9월 28일 생. 경상북도 대구부(중구) 남산동 출신으로 향년 22세인 1970년 11월 13일에 분신 자살하여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평화 시장의 봉제 공장 재단사로 일하고 있었고, 그 곳에는 10대 어린 아이들이 허리도 펼 수 없는 좁은 곳에 모여 기계처럼 일하고 있었죠. 다리가 저리고 안 좋은 원단 물질들 때문에 결핵에 걸리고 피를 토해도 해고당할까봐 업주에게는 알리지도 못했던 열악한 현실들.
전태열은 유독 마음이 여린 청년이었다고 하는데요, 주위 감자탕집의 할머니 인터뷰 내용을 봐도 따뜻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항상 여공들을 데리고 와서 아이들만 사주고 본인은 먹지 않았다는 거죠. 공짜로 준다고 해도 먹지 않기에 돈 받을 까봐 안 먹었냐고 나중에 물어보니 "아이들에게 먹었다 그랬거든요.." 자기가 안 먹었다는 게 탄로날까봐 안 먹었다는 에피소드입니다.
전태일의 어린 시절
전태일 열사는 2남 2녀 중 장남으로, 아버지가 재단사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합니다. 서울로 이사온 후 거액의 사기를 당하는 통에 13세에 온 가족이 천막촌으로 내몰렸고, 그 때부터 전태일은 가장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해요. 결국 17세에 평화시장에 일명 '시다'로 취직을 하게 되죠.
열악한 노동현실에 분노하다
재단사로 일을 시작했지만, 허리도 펼수 없는 좁은 공간, 박봉, 폐렴 등 질병으로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노동 환경 개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전태일은 당시 한문혼용으로 언어를 쓰고 있었는지라 내용을 알 수 없어 대학을 나오지 않고 대학에 다니는 친구조차 없는 것을 개탄했다고 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해설서를 얻어 근로기준법을 공부했습니다. 현실과 근로기준법의 괴리를 알게 된 전태일은 1969년 6월 최초의 노동 운동 조직 '바보회'를 창립해서 근로 조건의 부당함을 알리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공장주들에게 밉보여 해고되어 한동안 막노동을 하며 지냈습니다.
삼동친목회를 결성하다
이후 다시 재단사로 취직을 하게 된 전태일은 예전에 바보회 친구들과 함께 '삼동친목회'를 조직해서 더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러자 정재계에서 그들에게 '사회주의 조직'이라며 빨갱이로 몰아갔죠. 이에 깊은 좌절을 느낀 전태일은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분신을 택하게 됩니다. 당시 함께 했던 조영래에 의하면 "누구 한 사람 죽는 것처럼 쇼를 한 판 벌려서 저 놈들 정신을 번쩍 들게 하자."고 계획했다고 합니다.
분신 자살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앞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집회가 경찰, 고용주가 동원한 패거리 등에 의해 방해를 받자 전태일은 동화시장 계단에서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친구 김개남에게 성냥을 그어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익명의 친구가 뒤에서 불을 붙여주었고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선언한 뒤 불에 다 생을 마감했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법전과 자신을 태우며 외친 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국립의료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이미 전신에 3도 중화상을 입었고, 당시에 환자가 돈이 없으면 치료를 안하던 시대라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전태일은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어머니, 내가 못 다 이룬 일 어머니가 이뤄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그날 밤 10시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전태일 유서 전문
전태일은 분신을 시도하기 전에 동창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유서를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깎아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려야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전태일 수기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작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의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전태일 열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안타깝게도 대통령에게 전달되지는 못한 편지 전문입니다.
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26]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
저는 서울특별시 성북구[27] 쌍문동 208번지 2통 5반에 거주하는 22살 된 청년입니다. 직업은 의류계통의 재단사로서 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읍니다.[28] 저의 직장은 시내 동대문구 평화시장[29]으로써 의류전문 계통으로썬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것으로 종업원은 2만 여명이 됩니다. 큰 맘모스 건물 4동에 분류되어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기업주가 여러분인 것이 문제입니다만 한 공장에 평균 30여명은 됩니다. 근로기준법에 해당이 되는 기업체임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 여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미싱사의 노동이라면 모든 노동 중에서 제일 힘든(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노동으로 여성들은 견뎌내지 못합니다. 또한 2만 여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써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인 것을 부인 할 수 없읍니다. 전부가 다 영세민의 자녀들로써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에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하루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각하께 간구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저 착하디 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발전도상국에 있는 국가들의 공통된 형태이겠지만 이 동심들이 자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읍니까? 근로기준법이란 우리나라의 법인 것을 잘 압니다. 우리들의 현실에 적당하게 만든 것이 곧 우리 법입니다. 잘 맞지 않을 때에는 맞게 입히려고 노력을 하여야 옳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 기업주들은 어떠합니까? 마치 무슨 사치한 사치품인양, 종업원들에겐 가까이 하여서는 안 된다는 식입니다.
저는 피끓는 청년으로써 이런 현실에 종사하는 재단사로써 도저히 참혹한 현실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읍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읍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읍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읍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전태일이 끼친 영향
전태일의 분신 자살에 현대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치적 의미의 민주화에만 관심을 두던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노동자와 빈민에 대한 문제에도 주목하기 시작했죠. 노동자들 스스로도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노동조합을 세우려고 하였고 이에 따라 70년대에 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세워졌습니다. 주로 더 열악한 위치에 있었던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남겨진 전태일의 가족
전태일의 가족들도 모두 노동 운동에 투신하게 되었고, 특히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수많은 아들, 딸들을 지켜주기 위한 어머니의 삶으로 바뀌게 되어 "청계천 노동자들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우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의 kbs 다큐가 방영되던 당시에는 아들 전태삼 부부와 살고 있었으나, 2011년에 심장마비로 작고하셨습니다.
여동생인 전순옥도 노동운동가가 되어 2012년 제 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현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남동생 전태삼도 노동 운동에 참여 중입니다.
2020년 국민 훈장 무궁화장 받다
2020년은 전태일 열사 50주기여서 각종 단체와 미디어 정부에서 그의 삶과 노동 운동을 재조명했습니다. 2020년 11월 12일 대한민국 정무가 노동계 최초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씨와 전순옥 전 의원, 전태리 씨에게 전태일 열사에 대한 훈장 추서식을 갖고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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